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탱크 데산트 (문단 편집) == 상세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c2.staticflickr.com/21244336213_93e9bfeeac_z.jpg|width=100%]]}}} || || T-62에 탑승하여 탱크 데산트 중인 소련군 보병 || 공격작전시 [[보병]]이 [[전차]]에 올라탄 채로 작전하는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T-55]], [[T-62]]에는 아예 보병이 붙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기본으로 설치되기도 했다.[* 물론 전투 돌입시 하차 후 전투가 원칙이나, 전차에 올라탄 보병이 강 도하를 하거나, 점 표적의 목표물이 소수로 있을 때엔 하차하지 않고 전차 위에서 소총/기관총 사격을 해서 전차 엄호, 보병 방호도 했다. 출처는 소련군 교범(1971) 전차 탑승한 보병 간의 행동/전투강령.] 보병은 전차와 보조를 맞춰서 움직이기 힘든데, "[[장갑차]]는 모자라니 보병들을 탱크에 올라타게 해서 수송하면 된다!" 또는 "병사들을 전차 위에 올려 전투 중 기관총처럼 이용한다"라던가 심지어 "[[고기방패|보병을 추가장갑으로 이용한다]]"라는 식의 발상이었다고 '''오해받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다르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92394823434.jpg|width=100%]]}}} || || 1978년 찍힌 동계 훈련 당시 촬영된 사진[* [[https://warspot.ru/2258-rozhdennyy-dlya-globalnoy-voyny-geroy-lokalnyh-konfliktov]]]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578806586.jpg|width=100%]]}}} || || T-72에서 하차중인 소련군 병력 || 15km 이하 서행하는 전차에서 천천히 내리면 사고 날 위험성 크니, '점프하며 하차' 하는 게 더 안전하여 저렇게 하는 것일뿐, 사실 웃기자고 찍은 게 아닌데, 대한민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에서도 웃긴 추억운운하고 있다. 물론 그냥 보면 웃기게 보이긴 하지만, 위 사진의 [[T-72]]에서 하차하는 보병 포즈와도 비슷하니, 웃기려고 찍은 사진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데산트란 말 자체가 영어의 descent에 해당하는 하차라는 의미다. 포탑이 회전하는 중인 전차 위에서 보병이 전투를 벌이겠다는 발상[* 돌아가는 포탑에 맞아 상해를 입는 사건은 지금도 각국 기갑부대에서 자주 일어날 만큼 위험한 일이다.] 자체는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탱크 데산트는 기본적으로 나눠진 제대 중 무너진 적에 대해 본격적인 침투에 나서는 2제대부터 접적지역(接敵前進) 1km 이전에서 필요에 따라 행하도록 되어있는 별도의 전술적 행동이다. 당연히 소련뿐 아니라 미군, 영국군, 독일군 등등에서도 쓰였다. 알려진 것처럼 보병을 무작정 갈아넣는 전술이 아니었단 이야기. 이건 [[우라돌격]]과 같다. 당연히 모든 보병을 일정 수준 이상의 방호력을 갖추면서 기계화시킬 순 없고, 아무리 2제대부터라도 전차만 내보내면 위험하다. 종심 침투 시 보병을 트럭에 태워 차량화해 후미에서 따라오도록 하면 보병 입장에서도 발이 편하고 수송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저항이 예상될 땐 트럭에게서 필요한 수준의 방호력을 절대 기대할 수 없으며 시야가 제한되고, 하차 후 전투 대형을 갖추는데 한 세월이 걸려 전차와 보병 모두 위험해진다. 때문에 기갑 위에 보병을 승차시켜 경계를 시키며 전투가 시작되면 즉시 반응할 수 있도록 하며, 주변에 엄폐물이 없을 시 전차를 엄폐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kTbCLYFF2eg|영상으로 보기(성인인증 필요)]]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OkinawaMarinesRideTank.jpg|width=100%]]}}} || || [[오키나와 전투|{{{#000,#ddd 오키나와 전투}}}]] 당시 미 해병들을 수송중인 [[M4 (105)|{{{#000,#ddd M4A3 (105)}}}]]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Valentine_tank_Mk3_desert.jpg|width=100%]]}}} |||| || 북아프리카 전역 당시 병력을 수송중인 [[밸런타인 전차|{{{#000,#ddd 밸런타인 보병전차}}}]]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01I-269-0240-11A%2C_Russland%2C_Panzer_mit_aufgesesssener_Infanterie.jpg|width=100%]]}}} || || [[독소전쟁|{{{#000,#ddd 독소전쟁}}}]] 당시 보병을 수송중인 [[3호 전차|{{{#000,#ddd 3호 전차}}}]]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13탱크데산트1.jpg|width=100%]]}}} || || 훈련중인 스위스군의 [[헤처|{{{#000,#ddd G13 대전차자주포}}}]][* 스위스군은 애초에 탱크 데산트를 적극적으로 채택하여 G13 상부에 탑승하는 병사들에게 고무 군화를 지급했다.] || 전장에서 전차를 호위하는 보병이 있으면 정찰, 수색, 공격은 물론이거니와 전차 수리/정비 시 보조 요원 등으로 쓸 수 있으며,[* 그래서 이스라엘군은 전차병을 4명으로 유지한다. 3명으로 줄이면 할 일은 그대로인데 일할 사람이 줄어드니까.]반대로 전차는 필요시 보병의 발이 되어주고, 화력 지원은 물론 엄폐물까지 되어준다. 보병 입장에서도 무거운 짐을 지고 발바닥이 벗겨질 때까지 [[천리행군]]을 하긴 싫기 때문에 소련군만이 아니라 [[독일군]]이나 [[연합군]], [[일본군]]도 전차장의 재량 하에 보병을 몇 명 전차 위에 탑승시키고 장거리를 운행하는 경우가 많았다.[[https://www.billdownscbs.com/2015/04/1943-russias-tank-desant-tactic.html|당시 사진들.]] '''즉 보병과 탱크가 상호 보완적인 존재였다는 것이다.'''[* 당시 완전히 기계화된 군대는 미군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느 국가든 말까지 이용했다. 그 기계화된 미군도 전차에 사람 태우고 다니는데 다른 나라가 안 그랬을 리가 없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cc9ed7b088a3cb5e2d4bbb6ef6561dd3151ace874a723f9409faccbccaa8381d.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imfdb.org/Fury_BAR_%281%29.jpg|width=100%]]}}} || || 퓨리에서 재현된 미군의 보병-전차 합동 작전 || [[퓨리(영화)|영화 퓨리]]에서도 미군이 이런 식으로 보병이 전차에 탑승해 전장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연하지만 저 보병들은 전투가 시작되자 전차에서 내리고 뒤로 빠져서 전차를 엄폐물 삼아 싸웠다. 미군의 경우에도 전차가 숲이나 밀림에 들어갈 때는 자신들의 좁은 시야로 인한 사각지대를 지켜줄 보병의 도움이 필수적이어서 자주 쓰였다.[* 한 미군 보병은 "우린 전차병들을 존경한다. 용감하니까. 나라면 절대 그렇게 하진 못할 것 같다. 전차는 겉보기에는 안전해 보여도, 불이 붙으면 그 곳에서 타죽을 수밖에 없다. 아주 끔찍하게 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차병의 사망률은 보병의 사망률보다 낮았지만, 전차병이 죽는 원인은 주로 화재 아니면 유폭이라는 끔찍한 상황이고 전차병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 여겨졌으므로 이런 죽음에 대한 공포는 총에 맞아 죽는 것보다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당장에 퓨리 초반에서부터 관련된 장면이 나오는데, 교전 중 전차 내부에 발생한 화재로 전차에서 탈출한 전차 승무원이 전신이 불타는 고통을 끝내고자 권총 자살한다. (이는 여객기 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률보다 현저히 낮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여객기 사고를 더 공포스럽게 여기는 이유와 동일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4059048_original.jpg|width=100%]]}}} || || 미군의 전차 탑승 교범 || 이런 식으로 미군 또한 보병들이 전차 어디, 그리고 어떻게 타야 하는지 교본까지 만들었다. 한국전쟁 때도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지평리 전투]]. 당시 지평리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된 미 2사단 23연대 전투단을 구출하기 위해 미 1기병사단 5기병연대의 [[M4 셔먼]], [[M46 패튼]] 전차 25대가 출동했다. 이때 전차 보호를 위해 보병 165명을 전차에 [[고기방패|총알받이]]로 태웠다. 9번의 격전 끝에 전차는 3대만 격파되고 22대가 지평리에 도착한데 반해, 보병들은 겨우 23명만 살아 있었다. 중공군들은 고지 위의 참호 속에 있고, 전차병들은 두꺼운 철판 속에 안전하게 보호된 상태에서, 전차 위에 얹혀 있던 미군 보병들만 죽어나간 것. 적어도 중공군의 육탄 공세를 막는데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보병들의 희생률이 너무 높아 이건 아무리 봐도 자살공격이라 전투가 끝나고 나서 미군내에서도 비판이 일어 났으며, 당시 보병 중에서 전투를 위해 탱크에서 뛰어내려 싸우다가 다시 출발할 때 못 따라가 낙오되는 경우가 속출했다. 하지만 탱크 데산트는 지평리 사례에서도 확인 되듯이 전차 입장에서는 확실한 방호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보병들에겐 확실히 미쳐 돌아가는 작전 방식이라서 문제지.[* 지평리 전투에서 포위당한 미 23연대는 3일간 중공군 3개 사단을 격파하고도 전사가 52명인데에 비해, 그들을 구조하던 부대에서 더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심지어 탱크마저 중간에 9번의 전투로 탄약을 다 쓰는 바람에 지평리에 도착해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되어 다음날 그냥 다시 돌아갔다.] 간혹 이걸 평시에 벌어지는 단순한 전차 얻어타기와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시에는 전차와 보병이 작전상 합류하면 작전 끝날 때까지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 전차에 배치된 보병이 다 죽어가면서도 전차를 호위한다던지, 전차가 보병을 구하기 위해 위험한 육박전을 벌이는 이야기가 전사책을 펼치기만 해도 대량으로 나온다. 앞서 이야기한 전차장 재량이라는 것도 자신의 전차부대에 작전상 배속된 보병 중에서 승차보병을 고를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뜻이다. 여담으로, 태평양 전쟁 때 미 해병대와 미 육군은 보전합동전술을 확실하게 깨우칠 수 있었다. 적 보병/강화진지/함정이 가득한 밀림과 상륙해안의 십자포화에서 스튜어트든 셔먼이든 전차가 아군 보병과 이격되면 확실하게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차와 동반한 보병 소부대가 산화하면서 전차를 지킨 전투가 많았고, 그렇게 살아남은 몇몇 보병과 전차가 전선을 돌파해 상황을 바꾸기도 했다. 보병부대와 전차간 소통이 원활하도록 전차의 뒤에 유선전화 수화기를 달아서, 동반하는 보병이 전차장과 통화할 수 있도록 했다. 탱크 데산트는 아니지만 상통하거나 다른 경우로 드물게 애초부터 보병 수송을 목적으로 한 IFV나 APC에도 내부가 너무 좁고 불편하다거나, 날씨가 너무 덥다거나, 지뢰/IED 등에 대한 방어력이 믿음직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차량 안의 승차공간은 비워놓고 외부에 타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M113]]이나 [[M551 셰리든]] 위에 올라타고 다니던 미군이나 체첸에서 BTR 위에 올라타고 다니는 러시아군 등의 사진을 종종 볼 수 있다. 체첸전 등의 경우 RPG 등에 의한 콘보이, 기계화보병의 피해가 커지자 좁은 차량 내부에 모여있다가 한 번에 몰살당할 바에 차량 밖에서 경계를 하다 전투가 벌어지면 즉시 하차해 신속히 대응하는 게 유리하다는 전훈의 반영이라는 이야기다. 2010~2020년대 돈바스 전쟁에서도 이런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 이 쪽은 포병의 대전차 집속탄/지능탄에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온 방법이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